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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인문사회읽기

트라우마 사회와 종교

by 황정현 2022. 11. 9.



단원고 학생들이 배 안에 있던 그 주간을 보내고 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그 주간. 교회는 부활절을 준비하며 고난주간으로 한주간을 보내던 그 시기.

천안함 생존장병, 세월호 유가족, 세월호 생존자.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보면 참사의 참혹함이 어디까지인지 가늠되지 않는다. 사건 자체로 끝나지 않고 2차, 3차 사회적 가해까지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도 국내외에선 전쟁과 질병, 사고로 인한 수많은 참사가 일어나고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피해자들이 누적되고 있다. 개인과 주변, 사회적인 치료까지 가능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돌봄이 필요할까.

종교의 자리를 생각한다. 종교의 쓸모. 그럴듯한 공간을 임대해 사람을 모으고, 더 그럴듯한 건물을 지어 더 많은 사람을 모으고. 그렇게 모은 사람과 재정을 가두어두고 관리하고 이리저리 내부행정을 위해 소비하는게 성공한 종교의 모습일까.

교회공동체 멤버들과 최근 출애굽기를 읽으며 모세에게 주어졌던 여호와의 말씀을 살폈다. 동시에 이 모세의 율법이 자신들의 소유인양 주장하던 유대교 지도자들의 모습이 오버랩 됐다. 주어진 의도와 너무도 다른 양상. 예수는 그것을 지적했다. 그래서 예수는 모세의 율법을 어기고 폐기하려는 것으로 오인받았고.

피해자가 켜켜이 쌓이고, 피해자가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는 사회. 트라우마 사회에서 종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고 누구든 불러모아 종교 자체를 유지하는 일에 활용해야하는가. 그러면 될까.

아픈 이들이 예배당 안팎에 있다. 찾아온 이들을 돌보고 치유하고, 예수처럼 성전 밖에 나가 세상의 아픔에 관여할 순 없을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마가복음 5장 34절. 사회적 종교적 낙인으로 예수께 조용히 다가와 슬그머니 옷깃에 손을 대었던 여인, 그 여인의 가족이 되어주시며 구원과 안녕을 말씀하셨던 예수처럼.


황정현목사(제자도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