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프로 중 하나가 [EBS 건축탐구 집]이다. 꼭 챙겨보지는 않고 채널 돌리다 머물면 끝까지 보곤 하는데, 어젠 마침 시작시간과 맞아 전체를 보게 됐다.
보통 두 집 정도를 소개하는데, 주제가 '이상하게 끌리는 집'이었다. 궁금했는데 보고나니 제목과 어울리는 매력적인 두 집이더라.
첫째 집은 매우 모던하게 -그동안 봐 온 어떤 집보다도 모던하고 세련된- 지어진 이층집이었다. 외관도 전형적이지 않고, 집이라기보다 사무실이나 빌딩같은 느낌이었고, 실내는 더욱 그렇더라. 1층 내부에 큰 아일랜드 식탁과 긴 테이블이 놓였고, 안쪽으로는 유리벽으로 나뉜 개인 서재인가 싶은 방이 있었다.
건축주는 어린 자녀를 둔 부부인데, 젊은 나이에 어떻게 벌써 저런 으리으리한 집을 지었을까 하는 맘이 드는 것도 잠시, 집에 대한 사연(?)을 들으며 오히려 참 멋진 분들이다 싶은 맘으로 돌아섰다.
사실 그 집은 건축주가 운영하는 디자인 회사로도 같이 사용하는 공간이더라, 어쩐지 과하다 싶은 거실과 공간들이었는데 그제서 이해가 갔다. 큰 회사는 아니니 직원들이 1층에 머물며 업무를 보고, 개인공간은 2층을 사용하는 구조였다. 회사 사무실 임대료와 집값을 더해 나름 좋은 선택을 했구나 싶었다.
여기서 끝이라면 그렇구나 싶을텐데, 일요일엔 그 집을 교회로 사용한다는거다. 아니...이 친구. 주일 예배 영상을 소개했는데, 작은 교회가 예배당을 소유하지 않고 집이자 사무실인 이곳을 활용하는 모습이었다. 본인이 목사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고 공간만 내어주는 것 같더라.
요즘 젊은 사람들. 이러저런 평가가 있겠지만 미디어를 통해 참 멋져보이는 모습을 종종 본다. 불편할텐데, 본인과 가족 잘 먹고 잘 사는 것 고민하기에도 버거운 때인데 멋있는 분이구나 싶었다.
두 집을 소개하는 프로이니 하나 더. 다음 집은 많이 다르지만, 어떤 면에서 결은 참 비슷했다. 창덕궁 담벼락 바로 옆에 위치한 집인데, 일단 외관이 그동안 이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집과는 많이 달라서 의아했다. 온전한 집인가 싶은 외관, 전체가 3층이지만, 마치 불법 건축물 같은 누더기 외관. 대체 뭘 보여주려는거지 싶더라.
하지만, 역시. 내부를 살피고, 집에 대한 서사를 들으니 앞에 소개한 집에 못지 않은 매력이 넘치는 구조물이었다.
몇십년은 족히 돼 보이는 집의 건축주는 젊은 싱글 남성. 본인은 소설과 수필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이 친구는 어딘가 상냥하거나 친절한 느낌은 아니었고, 이런 사람과 이런 집에서 뭘 기대할 수 있을까 싶었으나, 역대급 반전이었다.
일단 낡은 이 집을 구입해 4-5개월에 걸쳐 도면까지 직접 그려가며 철저하게 준비하고, 공사비 절약을 위해 공사기일을 최소로 잡아 단 2주만에, 그것도 직접 리모델링 했다는 믿을 수 없는 얘기였다. 당시 영상을 몇장면 보여주는데, 그 집에 있던 수 많은 방, 벽들을 직접 자르고 부수어 무려 3톤 분량의 폐기물을 처리했다는 얘기를 들으니...진짜 이 친구 뭐지 싶더라.
그렇게 탄생한 집은 멋드러졌다. 벽을 뚫어 만든 창으로는 창덕궁의 돌담과 돌담너머 푸르른 나무와 하늘이 보였다. 1층엔 오디오와 모니터를 설치에 휴식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2층엔 작업실을 꾸몄는데, 여기가 와...
2-3개의 창을 통해 창덕궁을 그냥 집으로 들여왔구나 싶고, 넓은 테이블과 오래된 집의 천정을 뜯어내고 노출된 서까래, LP 플레이어를 통해 그레고리 포터의 'Water Under Bridges'를 틀어 놓는데 하...(어제부터 계속 그 노래 무한 반복중🙂).
이 집에 머물면서 작업이 더 풍요로워졌다고 한다. 글을 쓰는 원천, 영감을 자신이 머무는 집에서 늘 얻고 있다는 젊은 건축주. 이 또한 참 멋진 젊은 영혼이다.
집, 공간, 삶, 일상, 일과, 새로운 세대, 일과 삶...세상은 참 오묘하다. 모두가 똑같은 삶, 같은 목적, 같은 쪽으로 걷는건 아니더라. 그 모든 게 참 매력적이다.
황정현 목사(제자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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