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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제자도 칼럼

교회가 사회학과 심리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

by 황정현 2015.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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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목회자에게 사회학과 심리학이 읽기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물론 목회업무의 시급성을 따라 아무래도 교회론에 손과 눈이 가는 것이 당연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기초체력에 관한 것입니다.

근자에 기업경영에 있어서 통섭(consilience)이라는 개념이 강조됩니다. 특히 인재채용에 있어 주목받고 있다죠. 흔히 지식의 통합을 의미하는 통섭이 대두되는 것은 점차 인간에 대한 이해, 윤리도덕적 세심함을 요구받는 사회가 되기때문입니다. 그동안 수익창출과 이윤추구만을 꾀하던 기업이 인문학적 통합을 고려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칫 인문학의 결여로 인해, 윤리-도덕적 문제가 발생한다면 단기적 손실만이 아니라, 기업 브랜딩 자체가 망가질 수 있기에 치명적일 수 있는거죠. 지난 남양유업 사태가 그 같은 예입니다. 따라서, 기업으로서는 인문학적 감수성과 기술적 능력을 동시에 지닌 '통섭형 인재'를 양성하고 채용하는데 점차 힘을 기울일 수 밖에 없습니다.

굿 컴퍼니(틔움)등의 책을 보면 이미 선진국의 기업들은 윤리적 문제에 민감함을 보입니다. 사회가 점차 윤리적 사안에 예민해지고, SNS가 활성화 됨에 따라 기업의 생존을 위해 어쩔수 없이(?) 윤리적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이전에는 단지 이미지 정도의 사안이었다면, 이젠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된 것입니다. 비윤리적 기업으로 낙인찍힌다면 아예 문을 닫을 수도 있으니까요. 언제부턴가 SK가 사회적기업 관련한 이미지를 꾸준히 조성하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그다지 상관이 없는데도 말이죠.

기업의 노력도 이러할진대, 직접 사람을 다루는 교회와 목회는 하물며 어떠해야할까요. 사람을 대하는 기술에 있어서도 여전히 수십년전과 차이가 없는, 아니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투박해지고, 무심해진 한국교회. 이제는 노골적인 성과와 수익, 정량적 측정 목표를 향해 올인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과 당혹스러움에 황당하고 허망할 지경입니다.

복음은 사회학도 심리학도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 한국교회가 무차별적 세례를 받고 있는 경영학, 마케팅 측면보다 가까운 것이 사실입니다. 사회학과 심리학은 사람에 대한 얘기입니다. 구조와 개인의 이해와 진단에 관한 담론입니다. 한때 '심리학에 물든 기독교'라는 책으로 이제는 심리학이 잔뜩 위축된 느낌입니다만, 심리학에 오염된 복음과 복음의 심리학적 측면은 구별이 필요합니다. 전자는 복음의 왜곡이나, 후자는 복음에 대한 인간적 이해입니다. 사회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구원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깊이하자는 것입니다. 이 시대 사람들이 어떤 구조 속에서 하중을 받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이 어찌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얼마 전 '미생'이라는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흥행했었죠. 대중문화를 다루는 이들도 우리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애환을 이해하고 담아내려 노력하는 것을 보며, 한편으로 교회생각에 무거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미생만큼도 사람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는 교회.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기뻐하시는 교회일까요.

일단 사람을 챙겨야 합니다. 사람부터 챙겨야 합니다. 그게 개혁이고, 갱신입니다. 사람을 개인적으로, 면대면으로 만나야 합니다. 얘기를 듣고, 함께 웃고, 함께 울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더 잘 이해하고 헤아리기 위해서 심리학도 사회학도 살펴야 합니다. 물론 최종적인 대안과 처방은 언제나 성경입니다. 그러나, 진단과 통찰에 유익한 일반은총적 유익들을 적극적으로 누리고 활용해야 합니다. 이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풍요로운 유산입니다.

황정현목사(제자도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