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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제자도 칼럼

인식의 거듭남이 필요합니다.

by 황정현 2015. 7. 10.



원죄(original sin)는 인간의 인식까지 오염시킵니다.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것이죠. 예를 들면 공포를 느껴야할 상황을 안전하게, 반대로 안전을 누려야 할 상황을 공포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센서가 고장난 것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선악과를 범한 뒤 아담의 반응입니다. 그를 찾는 하나님을 피해 숨었습니다. '두려워서 숨었다'고 합니다. 죄의 증상이 나타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관계가 깨어짐에 따라, 평안과 안전을 느껴야할 대상을 공포스럽게 인식하는 것이죠.

이러한 죄의 증상은 여전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예수께선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질과 신. 어느쪽이 안전할까요? 신이 물질을 만들었다는 신앙을 견지한다면 답은 명확합니다. 하지만, 굳이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나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소유를 쌓아두는 것에는 안전함을 느끼지만, 소유를 버리고 신을 가까이 하는 것에는 불안함을 느낍니다. 안전의 대상에게 공포심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로 인해 고장난 우리의 인식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무엇보다 인식의 새로움을 의미합니다. 내 선입견에 따라 피상적으로 성경을 읽을 때엔 그 내용에 부담을 갖지 않습니다. 뭐든 맞는 말이니 당연하게 여기고 마는 것이죠. 하지만, 삶의 무게를 실어 성경을 대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어느 한 구절도 고통스럽지 않은 부분이 없습니다. 성경의 내용이 나를 옥죄고, 죽일듯이 느껴집니다. 신에게 그렇게 반응하듯 신의 계시에도 동일하게 공포심을 느끼는 겁니다. 거듭남은 바로 이 부분에서 전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공포의 대상과 안전의 대상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 놓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이 만만치 않습니다. 뿌리 깊은 인식의 타락을 하루 아침에 송두리째 뽑아내고 새로 심을 순 없습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바꿔나가야 합니다.

인식의 거듭남은 어떻게 적용될까요. 불편하고 어색하게 여겼던 것, 때론 혐오스럽고 또는 하찮게 여겼던 것들이 수용돼야 합니다. 반대로 편안하고, 안락하고, 유쾌하고, 가슴 설레게 느껴졌던 것들로부터 멀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거듭난 인식의 작용입니다.

개인적으로 마태복음 25장을 통해 이것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늘상 좋은 말씀으로 여기던 그 본문이 생애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더욱 면밀히 살피니 도무지 뿌리칠 수 없는 내용이 저를 가뒀습니다. 양과 염소의 구분, 오른편에 있는 자와 왼편에 있는 자의 구분, 그리고 그 결과인 영생과 영벌. 익숙하던 본문이 그렇게 낯설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한 구절.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45절). 이 말씀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일상에서 '지극히 작은 자'를 찾았습니다. 때론 전철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계신 악취나는 노숙인의 모습으로, 또 때로는 생떼 같은 자식을 바다에 빼앗긴 채 거리에서 유린하는 세월호 유가족의 모습으로, 그리고, 종종 목양지가 없어 진로와 소명에 대해 회의하는 목회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렇게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고민하는 시간이 지속되자,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앞서 말한 인식의 전환이 진행됐습니다. 늘상 신앙 안에 있다고 여겼으나, 여전히 불편하고, 유쾌하지 않던 것들이 별 문제 없이 새롭고 자연스럽게 다가왔습니다. 반대로 익숙하던 것들에 더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심지어 염증까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돌아보면 스스로도 낯설고 어색하기까지 한 변화가 계속 되었습니다. 여전히 그러한 과정의 연속에 놓여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신앙은 물리적 변화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예배당 밖에 있던 생활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고 신앙인건 아닙니다. 비종교적인 모습에서 익숙한 종교인의 모습을 갖췄다고 신앙인것도 아닙니다. 신앙은 화학적 변화입니다. 전혀 다른 차원의 또 다른 삶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거듭남은 창조적 개념입니다. 창세기에서 세상을 피조하시듯 사람을 재창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거듭나라'는 말씀에 니고데모는 어미의 자궁 속으로 다시 들어가야하느냐고 질문한 것입니다. 거듭남은 다시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다시 태어나는 인식이어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중단 없이 그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고통이 따르고,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이 몰려와도 우리의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의 시작입니다.

황정현목사(제자도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