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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제자도 칼럼

목회자의 열등감 그리고, 공감능력

by 황정현 2015. 7. 9.

한국교회 문제.
좀 다르게 얘기 해보자.

한국교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어쩌면 목회자의 피해의식과 자격지심일 수 있다. 사실 적잖은 목회자가 평신도에 대해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다. 학벌, 소득, 사회적 지위, 소유 등에서 일종의 열등의식을 지니고 있다.

목회자의 이런 열등의식은 목회적 폭력성으로 나타난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희생의 삶을 살고 있고, 당신들은 세상에서 자신의 쾌락을 위해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식이 뿌리내리면 성경을 보는 관점에서 왜곡이 발생되고, 성경을 전달하는 태도나 내용에 있어서도 필연 심각한 오류가 발생한다.

목회자의 열등감은 사실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유학과 학위에 집착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학위가 없는 지방신학교 출신, 또는 교단신학교 신학과 출신의 경우 대개는 일반대학 졸업자에 대한 일말의 부담을 갖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형교회에서 교역자를 선발하는 1차적 기준이 학벌이다. 유학파와 일반대 출신을 우선적으로 선발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부분이 해결되지 않고는 소위 '좋은 직장(?)에 취업'이 어렵게 된다. 그럴 경우 활로가 되는 것이 유학이다. 유학을 통해 학벌과 학위의 문제를 해결하고, 열등의식과 자격지심을 극복하려는 것이다. 강단에 미국유학 무용담이 넘쳐나는 것과 훈장달고 과시하듯 학위를 뻐기는 것은 이런 이유다.

열등감이 치명적인 이유는 목회를 자기입증의 발로 삼기 때문이다. 교인수, 교회단독건물의 유무, 예배당의 크기, 부교역자와 직원 규모, 심지어 목양실의 크기와 소장하고 있는 책의 규모까지 모든 것이 자신의 열등감을 자극한다. 무한경쟁의 막장의식이 작동하는 것이다. 흔히 목사들이 오랜만에 만나서 나누는 인사가 있다. "요즘 어디 있어?"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인사가 있나 싶겠지만, 항상 듣는 말이다. 어느 교회에서 일하냐는 말이다. 직장인들이 서로의 회사를 묻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음으로는 '대우를 어떻게 해주는가?'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고, 그 다음으로는 앞으로 어떻게 할거냐는 생계 프로세스(?)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하나님나라의 비전과 교회개혁, 한국사회에 대한 염려, 교인에 대한 걱정과 안쓰러움...이런 얘기들? 물론 그런 얘기들이 많이 오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서적 상태가 이렇다 보니 타인이 자신에게 취하는 언행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잦다. 특히 나름의 전공영역이라 생각하는 교회운영과 설교, 성경해석, 신학적 문제에 들어서면 어떤 이견도 불편함을 견디기 어렵다. 이는 자신의 고유영역이 무너지면,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부분 마저 무너지리라는 두려움에서 기인한다. 이쯤되니 교인은 자신이 돕고 돌봐야하는 양떼라기보다 경쟁상대 또는 적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소위 자신의 목회방침을 따르지 않는 교인을 향해 폭력적 독설을 쏟아내는 이유가 그래서다. 반대로 자신을 지지하고, 떠받드는 교인은 심복과 같이 무한신뢰하며 의존한다. 정치도 이쯤되면 낙제수준이다.

장황한 얘기를 하게된건 가히 공황적이라 할 수 있는 한국교회와 목사들의 공감능력 결여 때문이다. 근자에 동성애 관련 담론을 보며 이건 마치 이성도, 감정도 없는 금수가 달려드는 느낌을 받는다. 고장난 오디오처럼 뜻도 모르는 같은 얘기를 반복한다. 대화의 조금의 진전도 없다. 성경을 좀 보자고 설명해도 자신이 암기한 일부 지엽적 구절에 국한해서 같은 말만 읊조린다. 동성애자에 대한 이해도 일말의 연민도 없다. 공감이 없는 것이다. 역지사지 따위는 상상조차 하겠나. 결국 궁지에 몰리면 '그래도, 죄는 죄다. 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조금의 타협도 할 수 없다.'며 의인 코스프레, 순교자 코스프레로 막아선다. 심지어 전병욱의 성범죄를 같은선상에 놓고 말하는 궤변과 억측, 언어폭력 앞에는 정말 염증이라 할지, 혐오라 할지, 무력함이라 할지...알 수 없을 감정이 몰려온다.

작년 이맘때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한국교회를 보며 참람함을 금할 수 없었다. 이번엔 한 술 더 뜨는 느낌이다. 장애적 공감능력 결여를 목사의 열등감과 피해의식에서 찾고보니 일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안쓰럽고 불쌍하다. 도대체 죄인을 찾아오신 예수, 그들에게 삶을 내주시고, 결국 그들을 위해 희생하신 예수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멈추지 않는다. 적어도 이런 한국교회는 아니겠다는 확신이 점차 굳어진다.

황정현목사(제자도연구소)


​​사진은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 걸린 방한나님의 그림 걸개입니다. Photo by 제자도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