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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제자도 칼럼

이웃의 아픔을 보듬는 교회

by 황정현 2015. 3. 28.

​​한국교회 이야기
몇 년 전 A목사는 8년간 부목사로 일해 온 교회로부터 해직통보를 받았다. 아내의 뇌종양 판정에 따른 수술과 치료, 요양의 과정에서 교회 직원으로서의 온전한 시무를 담당할 수 없다는 사유였다. 그 교회는 그 후 내용증명을 통해 사택을 비우라고 통보를 보내왔다. 초등학생 두 자녀와 치료 중인 아내를 뒷바라지 하고 있는 도중 오갈 곳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청년 시절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B성도는 몇 년 전부터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 그가 교회를 불편하게 여긴 것은 결혼 후 자녀를 출산하면서 부터다. 임신 중 태아에게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믿음으로 출산을 감행했다. 하지만, 아이는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였다. 의사들은 아이의 생존을 장담하지 못했다. 이때부터 가정의 경제적인 상황과 더불어 교회생활에 어려움이 찾아왔다. 건강이 좋지 않은 아이는 함께 청년시절을 보냈던 성도들의 자녀와 비교됐다. 자격지심인걸까...그들이 예배당에 끌고오는 고가의 유모차와 명품의류, 유아용품은 스스로를 더욱 초라하고 힘들게 만들었다. 교회는 여러모습으로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교인과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강조했다. 설교자의 메시지는 주로 중산층을 겨냥한 공감하기 힘든 내용이었다. 점차 교회출석이 꺼려졌다.

한국교회 민낯과 성경의 오독
이것이 한국교회의 민낯이다. 교회 밖의 이웃을 돌보는 것은 요원하고, 교회 안의 구성원조차 품고 보듬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수년간 신앙의 지도자로 일한 목회자까지도 제 기능(?)을 할 수 없자 소모품처럼 교체해 버리는 모습에서, 진정 교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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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경을 제대로 읽는 것일까?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을까? 혹시 그것을 오해하고 있지는 않을까. 사실 성경의 관점으로 보는 한국교회 모습은 무척 생경하다. 성경의 결론과 핵심사상은 이웃을 향한 자기희생적 사랑이다. 흔히 이신칭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갈라디아서는 뒷부분으로 가며 의롭게 된 자로서의 삶의 모습을 조명한다. 그곳에서 바울은 율법의 최종적 결론을 이렇게 천명한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갈 5:14

혹시 사도바울이 예수님의 사상을 오해했을까? 복음서를 살펴보면 예수님의 가르침 역시 결론은 이웃사랑임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선 구약성경 신명기 6장 4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곧, 이웃사랑의 정신으로 해석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막 12:29-31

이밖에도 복음서 전체는 예수께서 이웃사랑을 일관되게 강조하셨음을 증언한다. 결국 성경을 인정한다면 이웃사랑의 정신은 외면할 수 없는 결론이다.

자기사랑의 욕망에서 이웃사랑의 신앙으로
자명한 성경의 가르침을 부정하는 것은 자기사랑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이는 세속화된 종교의 대표적 모습이다. 자신이 믿는 신앙의 내용과 무관하게, 자신의 욕망을 신앙에 투영시킨다. 성경을 기초한다면 이기적 욕망에서 비롯되는 신앙은 깃들여지가 없다. 이웃사랑이 없는, 작금의 한국교회는 신앙의 결과라기보다 자본에 물든 세속적 지배의 결과물로 봐야한다.

한국교회가 연일 시끄럽다. 어디서부터 풀어가야할까. 성경이 말하는 예수의 정신을 확인하는 것으로부터여야 한다. 우리의 실존 앞에서 정직하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청종하는 것으로부터 그렇게 다시 시작하기를 바란다.

황정현목사(제자도연구소)
hwang@gooddisciples.org



사진. 이천한솔교회 예배당의 모습. photo by 제자도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