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어셈블리' 종영이 가까와 온다. 지난 18화에선 국민진상 진상필 의원의 법안발의를 다뤘다. <패자를 위한 두번째 기회의 법안>.
이 드라마는 시종 배달수라는 노동자의 죽음을 모티브로 깔고 간다. 진의원이 국회의원이 된 것도, 그가 정치를 하려는 것도, 그의 정치의 지향점도 모두 고인의 삶과 죽음이 동기로 작동한다. 그가 제안하는 두번째 기회에 대한 법안 역시 마찬가지다.
두번째 기회...한마디로 '사회안전보장망'에 대한 얘기다. 우리 사회는 안전보장망이 없다. 마치 서커스 공연에서 외줄 위를 걸어가는 공연자 아래에 안전망이 설치돼있지 않은 것과 같다. 한번 발을 헛딛고 미끄러지면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두번의 기회는 없다. 그대로 모든 것이 끝난다. 죽음이다.
대한민국이 살인적 사회라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거리에 무수히 많은 노숙인들. 그분들은 날적부터 노숙인이 아니었다. 적지 않은 경우 중소기업 사장님이셨고, 인류대 출신, 멀쩡한 직장인,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아오던 분들이시다. 하지만, 한 번의 실패는 모든 것을 앗아갔다. 사업의 실패 또는 퇴직은 경제적 궁핍으로 이어지고, 살인적 금리의 빚더미 속에 결국 법적 문제로 이어진다. 가장의 어려움이 가족들에게 이어지지 않도록 합의 이혼을 하고 자녀들은 친척집에 뿔뿔이 흩어져 이산가족이 된다. 본인은 거리를 떠돌며 전전긍긍 살아간다.
허나 우리 사회의 무서움은 단지 안전보장망의 부재 때문만은 아니다. 실패한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이것이 보다 더 근본적인 살인적 요인이다. 실패는 죄다. 한번 실패는 용서받지 못한다. 실패자는 죄인이다. 참으로 천박한 사회인식이다. 천민자본주의의 전형을 우리사회에서 볼 수 있다. 사람은 온데간데 없고, 오직 능력에 따른 성과만 남는다. 연봉과 지위가 모든 것의 측정지표다. 어떤 꼼수와 불법을 저질러도 명망을 유지하면 존경을 받는다. 반대로 도덕적 청렴과 올곧음 따위는 개나 줘버려야 할 정도로 쓸모없는 요소가 되어버렸다. 이런 모든 것을 정화시켜줘야 할 종교 조차 병든채 천박한 세속적 사상을 유통하는 썩은 하수구가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양심의 호소가 의미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두번째 기회. 사람 편에서 생각한다면, 입장 바꿔 생각한다면 당연히 존재해야한다. 없는게 이상한거다. 그런데, 그게 우리사회에 없다. 만화같은 드라마 어셈블리. 상식적인 이야기를 '막장' 드라마로 볼 수 밖에 없는 우리 처지가 너무도 딱하다. 국민진상 진상필이 브라운관에서만 활동할게 아니라, 세상 밖으로 나와 모든 영역에서 활동해주었으면 좋겠다. 국회 보좌관으로 일했던 작가가 자신의 꿈을 원고에 옮겼나보다. 작가의 꿈이 우리의 꿈이 되기를. 그리고 그 꿈이 현실이 되기를. 우리 모두에게 사람답게 사는 두번째 기회가 주어지기를. 그런 당연한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황정현목사(제자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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