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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한국교회읽기

복음과 새로운 서사

by 황정현 2025. 5. 2.
공사장을 둘러싼 가림막이 관점에 따라 색다른 느낌을 준다


이제 예수천당 불신지옥으로 복음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시대가 됐다. 그건 그 시대를 반영한 복음의 어느 측면일 수 있겠으나, 복음의 모든 내용을 설명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시대가 많이 변한 지금 그대로 전달하기 어려운 메시지가 됐다.

고지론도 마찬가지. 90년대 모든게 풍요롭던 시절 기업마다 수익률이 높고, 경제성장률이 높던 때에 통용되던 서사가 고지론이다.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하고, 직장에서 자리잡고 승진하던 그 시절에 적용되는 메시지. 세상 깊숙히 들어가고 높이 올라가라. 세상을 장악하고 그래서 바꾸라는 이 서사에 많은 젊은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내일을 꿈꿨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금 어느 누가 예수천당 불신지옥, 고지론에 반응할까. 내세 이전에 현세를 살아가는게 문제고, 고지는 이미 금수저가 차지하고, 계층간 사다리는 끊어졌으며 혹 높이 올라가도 뭔가를 바꾸기 전에 다시 끌어내려지는게 현실인데 말이다.

시대 변화가 가파르다. 새로운 트렌드를 접하고 얘기하면 벌써 언제적 얘기냐는 말이 나온다. 이렇게 변화가 빠른데, 시대정신을 살피고 반영하려는 부지런함 없이 10년, 20년이 지난 구호와 메시지를 여전히 답습하고 있으니 전문영역의 전문성이 비전문가들에 의해 의심 받을 수 밖에 없겠다. 복음의 내용은 불변하나, 시대에 따라 그 강조점과 적용점은 달라진다. 복음과 페어링 된 시대적 포인트가 움직인다. 그걸 기민하게 포착하기 위해선 시대를 읽고 분석하려는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서사를 찾으려는 노력은 사회곳곳에서 볼 수 있다. 언젠가 한 자동차 광고를 흥미롭게 본적이 있다. ‘시작은 미약했다’라는 멘트로 시작하는 이 CF는 갓 러닝을 시작한 여성이 현실을 자각하고, 부단한 노력으로 결국 동호회 회장까지 올라 모임에 차를 몰고 가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그 과정에 많은 장면이 운동을 즐기는 이라면 공감하며 미소짓도록 연출된게 인상적이었다.

요즘 러닝크루라고 해서 여러 플랫폼으로 함께 달릴 사람을 모집한다. 휴일 아침 스벅에 들렀는데, 러닝 동호회로 보이는 여럿이 To Go Bag(여러 잔을 담아갈 수 있는 팩) 2개에 커피를 잔뜩 담아 나가는 모습을 보며 건전하고, 건강하고, 트렌디함을 느꼈다.

새로운 서사가 필요하다. 근사한 CF는 시대정신을 읽고 반영한 노력이 가져온 결과다.

단지 기독교 신앙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자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 스스로 공감하고 누릴 수 있는 신앙의 내용이 정리돼야 하지 않겠나. 소중한 신앙이 나에게 유익하고 만족을 주고, 또 누군가에게 도움되길 기대해 소개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새로운 서사가 필요하지 않겠냐는 말이다. 시대정신을 읽어내 복음과 신앙의 풍요로움을 잘 누리고 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제자도연구소
황정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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