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하지 않아도 하게 되는 일은 한국교회를 복기하는 일이다. 최근 르포, 다큐, 탐사보도 등으로 얼마 전까지 이슈였던 2030 영끌, 그 이후에 대해 다루는 걸 종종 본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원인과 그에 대한 윤리적 판단은 배제하고 지금 그들은 어떠한가를 보면 상당수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듯하다. 영혼을 끌어모았지만, 금리는 오르고, 주식은 연일 신저가를 갱신하는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도 접한다.
근본적인 사회구조를 넘어 직접적인 계기가 된 건 몇몇 성공신화에서 비롯됐다는 진단이 있다. 미디어를 통해 파이어족이 된 이들의 간증(?)을 접하며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은 것이다. 그게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그 결과 극소수에게 놓인 의자에 앉지 못한 대부분은 오히려 야무진 꿈을 꾸기 전보다 더 어려운 처지가 됐다.
이게 직업병처럼 교회로 연결되는데. 90년대-2000년대 초반 한국교회는 성공신화가 넘쳐났다. 각종 기독교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책에는 소위 성공한 목회자들의 얼굴이 박혔고, 1천 부 1 쇄도 팔기 힘들다는 기독교 서적이 수천 권씩 여러 쇄를 찍는 일이 일어났다. 어느 유명한 목사는 자기 통장에 인세가 쌓인다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하기도 했다.
자극. 목회자들의 성공스토리는 당시 '한국교회의 복음'-고지론과 맞물려 많은 목회후보생, 그리고 청년들에게 자극을 주었고, 그들은 믿음을 지녔다. 스스로는 신앙을 위한 믿음이라 여겼겠지만, 사실 그건 출세와 크게 다르지 않은 성공신화에 대한 믿음이었다.
성공을 위한 코스가 있다. 크게 하나는 부교역자로서 열심히 사역해서 어린이, 청소년, 청년부서 등을 성공시켜 놓은 후 보다 큰 교회로 이직에 이직을 거듭해 사회적으로 대기업에 해당하는 몇몇 교회에까지 들어가는 것. 그리고 거기서 잘 자리 잡아 든든한 커리어를 바탕으로 담임목사가 은퇴하는 다른 교회 담임으로 부임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개척인데, 이건 그야말로 영끌의 원리와 거의 흡사하다. 물론 앞의 코스도 자신과 가족의 많은 부분을 오로지 한 포인트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영끌과 같다고 보지만, 개척은 구조 자체가 아예 같다. 여러 루트가 있지만, 적지 않은 경우 가능한 레버리지 최대치를 통해 교회 공간을 마련하고 인테리어 등으로 비용을 투자한다. 개척에서 수만 명 신도의 교회로 성장시킨 내러티브를 가슴에 품고.
두 코스가 모두 적용되던 시절이 있다. 지금은 그 시절이 아니라는 게 문제고. 누군가는 영끌로 부동산 대박을 내고, 누군가는 주식과 코인으로 100억을 벌어 파이어족이 됐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엘리트코스를 거쳐 번듯한 교회 담임목사가 되고, 누군가는 어렵사리 시작한 개척교회를 통해 수천, 수만 명의 대형교회를 이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건 때라는 게 있고 같은 시기라 하더라도 그 자리는 몇몇 극소수에게만 주어진다. 물론 모두가 그게 나일 거라 여기겠지만.
문제는 이후다. 모든 초점을 거기 맞춰 살았지만, 그걸 이루지 못했을 때. 그리고, 그로 인해 오히려 이전보다 더 많은걸 잃게 됐을 때. 그때 어떻게 해야 할까.
정신승리라 해도 좋다. 하지만, 부는 세상의 전부가 아니고, 성공과 부를 좇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자세가 아니라고 여겼으면 좋겠다. 기독교 신앙은 많은 사람, 더 많은 사람, 더더 많은 사람을 모으고, 자산을 모으고, 건물을 키우는 게 전부는 아니라고. 한 사람이 온전하게 살아가는 것 오히려 그게 더 그것에 가까운 것이라고. 그리고 목회는 그걸 돕는 거라고. 이제라도 여겼으면 좋겠다.
대개 정답이 하나라고 하는 이, 꼭 그렇게 해야 만한다는 이는 사기꾼이더라. 여전히 세상은 다양하고 풍요롭다. 하나의 길에 모두가 몰려 성공과 실패를 논할 것만은 아닌듯하다.
황정현목사(제자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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