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교회는 젊은세대가 교회를 떠나는 이유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내놓습니다. 그 중 일정비중을 차지하는 진단은 성경교육과 교리교육의 부재에 대한 지적입니다. 지당한 분석입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에 경도되어 흥미위주의 교회경영으로 신앙의 본질을 놓쳐왔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 치열한 성찰과 반성, 그리고 회복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실 한국교회는 그동안 노골적으로 성경과 교리에 등을 돌린적이 없습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말씀중심을 강조해왔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면을 들여다보면 한쪽이 떨어져나간 온전치 않은 <축소된 복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현실진단을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해야합니다. 한국교회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신사참배강요>라는 노골적 우상숭배를 종용받으며 내상을 입었고, 그 피해는 신앙의 내용을 공적(사회적)영역에서 도려내어 사적(개인적)영역으로 축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결과 신앙의 주된 관심은 개인적(내면적) 측면에 국한됐으며, 나아가 사회문제를 신앙의 이름으로 거론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풍토가 조성되었습니다.
신앙을 사적영역에 국한하는 것이 왜 젊은세대를 교회로부터 멀어지도록 하는가? 사적영역을 넘어선 사회와 현실문제를 설명하지 못하는 신앙과 신앙의 대상에 대해 '그것이 진리일 수 있는가'하는 의혹을 갖게되기 때문입니다.
목사이자 사회운동가인 짐 월리스(sojourners 대표)는 자신의 청소년시절에 교회를 떠났던 경험을 들려줍니다.
보수적인 교회를 다니던 십대 소년 시절에 나는, 예컨대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 5:9)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천국에서의 삶을 위한 것이지 지금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당시 열다섯 살이던 나로서도, 인종적으로 분열된 내 고향 디트로이트나 미국이 비극적으로 개입한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이 땅이 아니라, 천국에서 화평하게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말은 어불성성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보수적인 우리 교회 교인들에게는 그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걸림돌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로막고 있음을 바라보면서 나는 마침내 교회를 떠났다. 지금도 교회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회피하기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기독교 신앙에 등을 돌리고 있다. 「하나님의 편에 서라」 , 69.
짐 월리스는 십대시절 미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회현실의 아픔에 대해 교회가 침묵하고, 신앙을 단지 내세적이고 내면적영역에 국한하는 것에 회의를 갖고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그의 자기 경험에서 비롯되는 교회비판은 오늘 한국교회에도 유효합니다.
한국사회에서 연일 터져나오는 문제들과 고통스런 현실에 젊은세대는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이웃의 문제임과 동시에 자신의 문제이기도 한 이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며, 해결책은 무엇이고,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해 진지한 신앙의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기대와 달리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오히려 무관심과 나아가 그러한 사회적 관심을 죄악시하는 태도로 일관한다면 그들은 결국 신앙 자체에 회의를 갖고 교회를 떠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 해법은 단지 과거 방식으로 성경을 가르치고, 교리를 읊조리게 하는 것으로 적절치 않습니다. 어떤 성경의 내용인가, 어떤 교리의 내용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축소된 복음이 아니라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을 아우르는, 즉 내 삶의 고민뿐만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우리사회의 문제에 대해 설명해주는 <온전한 복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축소된 복음의 오류를 비판하는 짐 월리스의 지적에 한국교회는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정말로 우리를 구원하며, 그분의 부활은 그분의 왕권을 세우고 그분의 왕국을 열었다. 구원은 개인적이며 동시에 사회적이다. 그러나 구원을 속죄에 국한된 복음으로 축소시키는 것은 최근에 나타난 오류이며, 이러한 오류는 하나님나라와 그 나라의 가르침 전부를 온전히 선포할 때 위협이 된다고 느끼는 풍요롭고 유력한 나라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그러한 사적인 복음은 우리에게 하나님나라의 길을 보여 주신 선생으로서의 예수님을 놓치고 있다. 「하나님 편에 서라」 , 70.
황정현목사(제자도연구소)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실 한국교회는 그동안 노골적으로 성경과 교리에 등을 돌린적이 없습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말씀중심을 강조해왔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면을 들여다보면 한쪽이 떨어져나간 온전치 않은 <축소된 복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현실진단을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해야합니다. 한국교회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신사참배강요>라는 노골적 우상숭배를 종용받으며 내상을 입었고, 그 피해는 신앙의 내용을 공적(사회적)영역에서 도려내어 사적(개인적)영역으로 축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결과 신앙의 주된 관심은 개인적(내면적) 측면에 국한됐으며, 나아가 사회문제를 신앙의 이름으로 거론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풍토가 조성되었습니다.
신앙을 사적영역에 국한하는 것이 왜 젊은세대를 교회로부터 멀어지도록 하는가? 사적영역을 넘어선 사회와 현실문제를 설명하지 못하는 신앙과 신앙의 대상에 대해 '그것이 진리일 수 있는가'하는 의혹을 갖게되기 때문입니다.
목사이자 사회운동가인 짐 월리스(sojourners 대표)는 자신의 청소년시절에 교회를 떠났던 경험을 들려줍니다.
보수적인 교회를 다니던 십대 소년 시절에 나는, 예컨대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 5:9)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천국에서의 삶을 위한 것이지 지금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당시 열다섯 살이던 나로서도, 인종적으로 분열된 내 고향 디트로이트나 미국이 비극적으로 개입한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이 땅이 아니라, 천국에서 화평하게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말은 어불성성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보수적인 우리 교회 교인들에게는 그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걸림돌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로막고 있음을 바라보면서 나는 마침내 교회를 떠났다. 지금도 교회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회피하기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기독교 신앙에 등을 돌리고 있다. 「하나님의 편에 서라」 , 69.
짐 월리스는 십대시절 미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회현실의 아픔에 대해 교회가 침묵하고, 신앙을 단지 내세적이고 내면적영역에 국한하는 것에 회의를 갖고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그의 자기 경험에서 비롯되는 교회비판은 오늘 한국교회에도 유효합니다.
한국사회에서 연일 터져나오는 문제들과 고통스런 현실에 젊은세대는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이웃의 문제임과 동시에 자신의 문제이기도 한 이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며, 해결책은 무엇이고,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해 진지한 신앙의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기대와 달리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오히려 무관심과 나아가 그러한 사회적 관심을 죄악시하는 태도로 일관한다면 그들은 결국 신앙 자체에 회의를 갖고 교회를 떠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 해법은 단지 과거 방식으로 성경을 가르치고, 교리를 읊조리게 하는 것으로 적절치 않습니다. 어떤 성경의 내용인가, 어떤 교리의 내용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축소된 복음이 아니라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을 아우르는, 즉 내 삶의 고민뿐만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우리사회의 문제에 대해 설명해주는 <온전한 복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축소된 복음의 오류를 비판하는 짐 월리스의 지적에 한국교회는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정말로 우리를 구원하며, 그분의 부활은 그분의 왕권을 세우고 그분의 왕국을 열었다. 구원은 개인적이며 동시에 사회적이다. 그러나 구원을 속죄에 국한된 복음으로 축소시키는 것은 최근에 나타난 오류이며, 이러한 오류는 하나님나라와 그 나라의 가르침 전부를 온전히 선포할 때 위협이 된다고 느끼는 풍요롭고 유력한 나라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그러한 사적인 복음은 우리에게 하나님나라의 길을 보여 주신 선생으로서의 예수님을 놓치고 있다. 「하나님 편에 서라」 , 70.
황정현목사(제자도연구소)
사진. 세월호 희생자 김웅기, 이승현군의 두 아버지께서 순례시 짊어졌던 <예수의 십자가>. photo by 제자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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