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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제자도 칼럼

회개를 모르는 한국교회

by 황정현 2015. 2. 6.

기독교신앙은 회개를 전제로 한다. 죄를 인식하고, 회개할 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의 길이 열린다. 허나 한국교회는 회개를 모른다. 회개를 말하지 않는다.

이는 신앙의 내용과 신앙 형식의 혼동에서 비롯된다. 신앙 형식을 갖추는 그 자체를 신앙함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미처 회개의 과정을 거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소위 모태신앙이라는 부류에게서 우선 나타난다. 출생시부터 모든 환경이 기독교 신앙적이다보니 신앙의 형식과 실제 신앙과의 구별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가풍에 따라 습관적으로 신앙형식을 갖춰왔고, 특별히 사회적-사법적-종교윤리적 죄를 범한적이 없으니 굳이 회개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신앙은 누구도 회개없이 이를 수 없다. 성경은 근본적 죄를 창조주와의 관계를 통해 설명한다. 조물주인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깨어졌고, 그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유일한 방편은 <회개>인 것이다. 따라서, 표층부의 사회적-사법적-종교윤리적 죄를 범치 않았다한들 심층부의 하나님과의 관계의 깨어짐에서 비롯되는 '죄인 판정'은 피할 수 없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 된다. 이를 외면하고 모태신앙이니 굳이 회개 없이도 온전한 신앙을 갖출 수 있다는 식의 인식은 참으로 무지하다 하겠다.

신앙의 연륜이 오랜 자들에게서도 이런 모습은 나타난다. 꼭 모태신앙이 아니더라도 오랜 기간 기독교신앙의 형식을 잘 갖춰 지내오다보면 스스로 선민의식(?) 같은 것을 갖게된다. 점차 인간관계 역시 동질성에 고립되어 그런 인식을 강화하는 쪽으로 굳어진다. 종교적 형식으로 보자면 흠잡을 데 없어지는 것이다. 예배당에 머무는 시간의 양, 헌금의 액수, 주로 만나는 사람,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의 주제...보고 듣고 행하는 모든 것이 종교적 형식의 틀 안에서 이뤄지다보니 죄와 회개는 자신과 무관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물론 이들이 어느 순간 기독교신앙을 받아들이며, 나름대로 회개의 과정과 믿음을 수용하는 시기를 겪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분명 구원교리상의 '칭의'라고 하는 부분을 적용할 수 있겠다. 즉, 신분상의 의로움을 갖췄다는 것이다. 하지만, 칭의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신분상'의 의로움을 말한다. 칭의에는 '성화'가 따라야한다. 서로를 상보적 개념으로 이해할 때 비로소 기독교신앙이 말하는 <의로움의 개념>을 파악할 수 있다. 성화는 신분상이 아닌 실질적 거룩함을 말한다. 나의 의지와 나의 행위로 내 삶이 실제로 새로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회개는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기독교신앙은 회개를 단회적, 일회적인 것으로 못 박지 않는다. 칭의 측면에서의 회개는 그렇다 할 수 있겠으나, 성화 측면에서는 날마다, 매 순간마다 죄로부터 돌이키는 회개가 요청된다.

한국교회의 비판과 처방에 대한 얘기가 계속되나,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기독교신앙 그 자체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회개의 내용'을 회개해야할런지도 모르겠다.

황정현목사(제자도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