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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서평, 리뷰

사회학자로서의 자끄엘륄

by 황정현 2015. 2. 5.

자끄엘륄이 국내에 기독교사상가로만 인식되어있음이 아쉽다. 「세상속의 그리스도인」, 「뒤틀려진 기독교」정도의 책만 주로 소개되었기 때문인 듯 하다. 엘륄은 신앙의 영역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현대문명과 시대에 대한 통찰을 품어낸다.

마르크스가 시대와 역사를 꿰뚫는 개념으로 <자본>을 말했다면, 엘륄은 그것으로 <기술>을 제시한다. 혹자는 마르크스가 다음 시대를 살았다면 그도 '기술'문제를 지적했을 것이라 한다. 그만큼 기술이 20세기 이후를 분석하는 중요한 관점이 된다는 것이다.

흔히 기술이라하면 기계와 정보, 물리과학 분야를 떠올리지만, 엘륄이 말하는 기술은 보다 폭넓은 개념이다. 엘륄은 스스로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절대적으로 효율성을 가지는 그리고 합리적으로 도출된 방법들의 총체"(「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173)로 기술을 정의한다. 쉽게 이해해서 인간활동에 적용되는 모든 기법(techique)이라 할 수 있겠다.

한때 마르크스 사상에 심취했던 그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담했을 정도로 사회개혁에 깊이 개입했다. 세상의 많은 사회문제를 보며 근본적 원인과 해법을 모색했다. 그런 노력은 불의한 사회구조에 대한 분석과 역사 속의 혁명을 살핀 자료들로 남겨졌다. 현재 엘륄의 저작은 한국자끄엘륄 협회와 대장간출판사의 노력으로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 엘륄총서는 25권가량 출간되었고 계속 발간중이다.

엘륄의 탁월함은 단지 역사적-사회과학적 통찰에 있지 않다. 앞서 말한 <기술>의 관점으로 역사와 사회를 진단해내지만, 그는 손쉽게 처방을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결론은 전혀 분석적이지도, 학문적이지도 않아 보일 수 있다. 보는 이에따라 허무해보일 정도로.

엘륄은 그리스도인이다. 단지 기독교라는 종교적 외형을 지닌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성경과 예수의 사상을 왜곡없이 존재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엘륄은 자신의 깊고 처절한 역사적-사회적 고민을 성경 속에서 예수의 사상을 통해 비로소 해갈해낸다. 하지만, 그것이 사상적 도피나 내면으로의 은둔은 아니다. 오히려 솔직함이다. 생애를 걸고 시대의 문제에 직면했으나 막다른 길에 봉착했다. 거기서 섵부른 미봉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답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그렇다고 엘륄의 신앙적 결론이 막다른 곳에서 얻은 것이라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그의 그런 접근이 사회를 보다 근본적으로 들여다보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겠다.

엘륄이 제시하는 신앙적 답변은 그가 투신해 온 사회를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에 적용되는 원리로서의 신앙이다. 엘륄은 기술문제에 대해 인생의 마지막까지 손쉬운 해답을 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즉, 이미 기술의 지배 속에 있는 인간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의 극복은 오직 '외부로부터' 비롯되어야만 한다. 엘륄에게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예수였다.

지금 우리사회는 연일 계속되는 사회문제에 어느때보다 당황하며 갖가지 진단과 처방을 쏟아내고 있다. 사실 세계적으로도 같은 문제에 봉착해있다. 한 시대를 오롯이 살았던 한 사람의 고뇌가 우리에게 작은 실마리와 빛을 제공해주기를 바란다.

황정현목사(제자도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