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론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 실효에 관해서는 의문이다. 적지 않은 경우 교회성장의 둔화와 정체에서 비롯된 관심인듯도 하다. 드러나는 문제의 진단과 처방은 언제나 본질을 향해야 한다. 한국교회 문제의 본질은 무엇일까?
목회의 기초는 무엇인가? 교회란 결국 목양(목회)를 지향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목양의 본질부터 살펴야하는게 아닐까.
<참된목자 Reformed Pastor>. 목양에 관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책 중 하나이고, 많은 이들에 의해 회자되고 인용되지만, 이 책 전체를 정독한 이는 얼마나 될까. 이 책은 얼핏보면 목회자의 자질과 자세를 논하는듯 싶지만, 실상 주된 관심은 구체적인 목회적 기법(?)에 두고있다. 저자 리처드백스터(Richard Baxter. 1615-1691)는 당대 교회와 목회자들에 대해 논쟁적인 이유로 이 책을 기술했다.
"제가 여러분에게 제시하고자 하는 첫 번째 주요 쟁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 세나라(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의 대다수 목회자들에게 있어서, 목회자들이 돌보도록 맡겨졌고 목회자들로부터 장차 확신을 얻고 순종하게 될 모든 성도들을 개인적으로 신앙 교육을 하고 교리문답교육을 하는 것이 목회자들의 당연한 사명이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신앙교육과 교리문답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 이 책의 주요 관심이다. 개별적 교리문답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다룬 것이 전체의 1/3가량 된다. 제3편의 2장 전체를 '개인별 교리문답 교육의 의무-양 떼들을 개인적으로 지도할 것을 제안함'이라는 제목으로 할애했다.
이 책이 논쟁적인 것은 당대 지배적인 목회형태와 관련있을 것이다. 대부분 설교 등의 군중사역에 그쳤고 백스터는 이를 지적한다. 개별적 교리교육을 강조하는 목회형태에 관한 그의 주장은 기존 목회자에게 상당히 낯설고 껄끄러웠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비장할 정도로 자신의 논지를 조목조목 제시한다.
"주님은 우스터셔(Worcestershire)와 그 인근 지역들에 있는 주님의 목회자들을 깨우셔서, 목회자의 도움을 완강히 거부하는 자들을 제외한 그 교구의 모든 성도들에게 목회자가 개인적인 신앙교육과 교리문답 교육을 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목회자들은 앞으로 이 사역을 감당하리라는 자신의 결심을 담은 결의문을 작성하고 거기에 서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위대하고 필수적인 사명을 그토록 오랫동안 게일리해온 것 때문에, 그들은 주님 앞에서 자신들의 영혼이 엄숙하게 통회하지 않고서 이 사역을 시작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였습니다.
1. 성도들은 신앙의 원리와 구원의 필수 주제들에 관해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우리 가운데 이견이 없습니다.
2. 성도들은 가장 유익하고 유리한 교육방식으로 교육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우리 모두 동의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3. 성도들과의 개인적인 토의 및 시험과 교육 등이 성도들의 신앙적인 유익을 위한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4. 개인적인 신앙교육은 성경에서도 추천하는 방식이고, 그리스도의 종들도 실천하신 방식이며, 모든 세대의 거룩한 자들도 인정한 방식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모순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5. 우리가 힘이 닿는 데까지 모든 성도들을 대상으로 이 위대한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의 영혼을 위한 우리의 사랑과 돌봄은 모든 성도들을 대상으로 확대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교구나 회중들 가운데 500명이나 1000명의 무지한 성도들이 있다면, 이것은 여러분이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여러분은 이들 중 몇몇 성도들에게만 이따금씩 말을 건넸을 뿐이며, 여러분이 도울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성도들을 무지 가운데 그냥 내버려 둔 것입니다.
6. 이처럼 위대한 사역에 우리가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것입니다.
7. 마지막으로, 모든 사명들은 가능한 한 질서정연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명들은 지정된 시간을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통상적으로 인정되는 원칙에 준해서 실천하기로 우리가 합의한다면, 어떤 애매한 상황에서도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의 언급처럼 아직 우리의 문제인식은 피상적인듯 하다. 적잖은 경우 그 관심이 개별적인 학습에 의한 돌봄의 대상이어야할 성도에게 있기보다는 목회자의 교회운영적 측면에서 비롯되고 있다. 우리사회,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이웃들의 삶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하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를 다니는 이들에게서도 동일한 모습을 본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소위 잘 알려진 명성있고, 건강하다는 교회를 출석하는 이들에게서도 같은 문제를 쉽사리 발견한다.
우리의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큰교회, 작은교회. 이런교회, 저런교회...그리고, 무수히 많은 교회론과 관련한 서적들과 해외의 사례에 이르기까지. 지금도 우리주변은 교회담론으로 포화를 이룬다. 하지만, 그 담론의 한 가운데 있어야할, 교회를 교회답게하는 온전한 성도의 모습은 그만큼 구현되고 있는 것인지. 백스터의 진심어린 호소가 400년 지난 우리에게 적용되고 열매맺기를 소망해본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골 1:28-29)
황정현목사(제자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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