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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제자도 칼럼

듣기를 즐겨하는 신앙에 대한 반성

by 황정현 2013. 9. 22.
기독교의 계시는 문자체계로 주어졌기에 필연적으로 기독교 신앙은 듣는 것으로 귀결된다 할 수 있겠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구절은 이와 같은 의미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들음이 없이 생각할 수 없고, 생각이 없이 반성할 수 없으며, 반성 없이는 돌이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분주한 삶 가운데 최대한 많은 기회와 시간을 마련하여 듣는 것(읽는 것을 포함하여)에 집착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계시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요사이 서적과 미디어를 통해 언제든 -해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교회 홈페이지와 포털을 통해 내가 원할 때에 언제든지 검색하여 필요한 내용을 원하는 설교자에게서 들을 수 있습니다. 또한 깔끔하게 편집된 도서를 통해 곱씹으며 읽고 들을 수 있습니다.

많은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고민되며 관심을 가지는 주제에 대해 답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며,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간결하고 강렬한 편집 영상들을 통해 단지 짧은 시간을 통해서도 곤고한 내면에 활력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스마트폰과 타블렛 등을 통해 상시 이것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유익이겠죠. 이 외에도 많은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유익을 통해 기쁘게 신앙생활을 영위해가고 있는 분 또한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많고 큰 유익에도 불구하고 이와같은 풍조(?)에 대해 아쉬움과 안타까운 마음이 남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본질과 근원적인 부분에 대한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들음에 대한 강조는 맹목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실천을 지향합니다. 다른 말로는 순종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기독교 신앙은 절대자이며, 전능자이자, 인류의 조물자인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분의 계시를 듣고, 순종하는 것으로 달성됩니다. 그렇다면 온전한 기독교 신앙이란 것은 '들음'과 '행함' 모두의 충족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성립되는 조건이 '들음'과 '행함'이라고 한다면, 여러 유익이 있음에 불구하고 지금의 신앙 사조를 그대로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단지, 듣기를 즐겨하는 신앙'을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물론, 때론 듣는 것에라도 천착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이를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듣는 것'을 지나 '사는 것'에 까지 이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듣기를 즐겨하는 신앙, 들음에 경도된 신앙의 가장 큰 문제는 너무도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변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신앙은 '듣는 것'에 국한됩니다. 신앙의 수준은 곧 듣는 수준입니다. 듣는 수준으로 신급(?)이 매겨집니다. 어떤 설교영상을 보았는가? 어떤 설교집을 읽었는가에 따라 신앙의 수준이 판단되는 듯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와같은 분위기는 곧 회심이 없는 한국교회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들음은 실천 곧, 들은대로 행하는 변화를 위한 것인데, 듣는 수준으로 신앙을 판단하니, 변화를 위한 실천이 실종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다소 주제에 앞서가는 얘기입니다만- 신앙의 본질을 추구한다는 목회자들에게서는 '회심을 지향하는 목회'를 라는 얘기가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목회의 궁극 목적은 회심을 넘어선 것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목회는 회심과 더불어 회심 이후의 삶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회심 이후의 삶은 제자도, 또는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서의 삶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회심만을 지향으로 삼는 것도 온전하다 할 수 없을텐데, 하물며 회심의 본질 요소인 '행함'에 대한 고려 없이 단지 듣기를 계속하는 것에 대해 신앙이라는 이름을 허락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듣는 것이 신앙이 아니다'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두가지 적용점을 두고 싶습니다. 하나는 듣기를 즐겨하는 신앙으로 자기위안을 삼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보았으면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듣기를 즐겨하는 신앙으로 자기위안을 삼고 있는 이들을 보며, 그들을 우러러 봄으로 지향점을 삼거나, 자신과 비교하여 열등의식에 빠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단지 '듣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 순간, 단지 '말하는 것' 또한 신앙이 아니라는 진리가 뼈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