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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제자도 칼럼

팀 켈러가 한국교회에 유의미한 이유

by 황정현 2016. 7. 5.


팀 켈러가 한국교회에 유의미한 이유는 그의 신학적 보수성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보수적이다. 비록 신학이 진보적인 경우도, 교회의 모습이나 목회는 보수적인 경우가 많다. 최근 한국교회가 방향을 잡지 못하는 큰 이유는 이 보수교회들이 목회방향을 잡지 못하는데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기존까지는 교회성장의 시기였으니, 일단 모인 사람들을 데려다 놓고 이것도, 저것도 하면 됐으나 이젠 그런 시대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이젠 '선교적'이어야 한다. '선교'라는 단어 자체도 여러 정의와 뉘앙스가 있겠으나 일단 통상의 의미로, 더이상 자발적으로 모여들지 않는 시대를 뜻해서 선교적이라는 것이다. 팀 켈러는 이 부분에서 철저히 <도시>를 키워드로 선교적 고민을 해왔다. 단지 사람을 끌어모으는 것이 아닌, 하나님나라 관점에서 '교회는 도시의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그들의 환경과 삶, 필요를 면밀히 민감하게 살폈다. 그 결과 리디머장로교회를 개척해서, 많은 이의 주목을 받기에 이르렀다. 단지 개척성공이라 말하지 않는 것은 교회가 드러나보이는 모습과 더불어 그의 깊은 고민과 담론 때문이다. 

팀 켈러는 문화-사회적으로 상당히 진보적 양상을 보인다. 그는 사회를 고민한다. 사회문제와 도시의 여러 제반에 대해 심도있게 살피고 그것의 해결을 위해 다가간다. 헌데, 그런 사회적 관심에 비해 그의 신학은 매우 보수적이다. 개인적으로, 엿보이는 사상과 사역의 면면에 비해, 알면 알수록 보수적인 신학을 견지하는 것에 놀라고 있다. 보수교단신학에서 읽어온 익숙한 이름들이다. 루터, 칼빈, 조나단 에드워즈, 마틴로이드존스, 싱클레어 퍼거슨, 존 오웬, D.A.카슨, 케빈 벤후저. 사실 이런 이름들을 보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팀 켈러의 보수신학적 토대와 사회-문화적관심은 어떻게 양립 가능한가? 그는 이 부분을 '신학적 비전'이라 불리는 '미들웨어'로 설명한다. 쉽게 말해서 '하드웨어'라 할 수 있는 교리적 토대가 미들웨어를 지나며 '소프트웨어'라 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양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게 보기에 따라선 신학과 사역의 괴리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사실 한국교회에선 이부분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동안 보수신학의 목회적 모습과 진보신학의 그것을 공식과 같이 받아들여 왔기에, 서로 문화적으로 다른 양상을 띠는 것을 받아들이는게 쉽지 않다.

그간의 한국교회의 보수신학은 대개 '교리교육적 목회'에 집착해 왔다. 90년대부터 한국에서 매니아층을 형성해온 청교도신학과 목회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어느 고정된 신학에서 고정된 목회가 나오는 것처럼 설교패턴과 목회패턴이 정형화되어 있다. 그 내용은 주로 교리에 대한 이해와 그것의 개인-내면적 적용이다. 하지만, 팀 켈러는 그 상성(?)을 깬다. 그의 신학은 한국형 청교도들이 말하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조나단 에드워즈, 존 오웬, 마틴 로이드존스는 그의 글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런데, 바로 그 신학을 인용하며 전혀 다른 목회사역적 양상을 끌어낸다는 것이다.

말이 길어지면 '미들웨어'에 대한 설명이 길어질듯해, 글의 취지를 강조하며 정리하자면. 한국교회는 헤매고 있고, 그 대부분이 보수교회이고, 이유는 답을 찾지 못해서인데, 그 답은 팀 켈러에게서 어느정도 실마리를 얻을 수 있겠다는 것이고, 왜냐하면 팀 켈러가 보수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같은 보수신학으로부터 통찰력있는 사회적 담론을 끌어내고 있기에 보수교회의 비중이 높은 한국교회가 '문제 많은 한국사회를 어떻게 직면해야할까'하는 고민에 좋은 선물이 될 수 있겠다는 것이다.

황정현목사(제자도연구소)

hwang@gooddiscipl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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