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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제자도 칼럼

믿음이란 무엇인가

by 황정현 2017. 2. 7.

​​

1.
믿음이 무엇인가.
믿음이 나의 소유인가.
내 것인가.

믿음은 내 실력인가.
내가 과시할 나의 유산인가.

믿음으로 사람의 높고 낮음을 가리고,
믿음으로 자신의 욕망에 군불을 땔 수 있는가.

한국교회에게 믿음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믿음은 무엇인가.

2.
한국교회의 문제는
전병욱이 성범죄를 저질렀기 때문도 아니요,
오정현이 큰 건물을 지었기 때문도 아니요,
조용기가 돈 지랄을 했기 때문도 아니다.

한국교회 문제는 믿음을 모르는 것이다.

수십년간, 십수년간 예수를,
그것도 열심히 믿어왔다면서
뭘 믿는지 모르고 믿는게 진짜 문제다.

3.
믿음이 무엇인가.
무엇을 믿는게 믿음인가.

예수를 믿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를 믿는 예수교는
예수의 무엇을 믿는가.

좋은 말씀?
착하게 살아라. 교회 잘 다녀라.
예배 빠지지 마라. 헌금 잘 내라.
부유해져라. 높아져라. 취업해라. 승진해라.
진학해라. 사람들에게 존경 받아라.

그런 말이 성경에 어디 있는가?
예수가 그런 말을 언제 했는가?

한때 한국교회가 소위 고지론에 휩싸인 적이 있다.
높이 올라가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성공해서 두각을 나타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영광을 받으신다는 고지론.

당시 대형교회, 대중적인 설교자를 중심으로
고지론적 메시지가 번져나갔다.
대형집회의 단골 메시지였다.

교회가 성장하고, 교세가 커져갔다.
자꾸 모이고 분위기가 좋으니
여세를 몰아 ‘부흥’의 분위기를 재연하려 했다.
2007년도의 어게인 1907이 그 운동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거품들은 다 빠지고
이제 한국교회는 세상의 천덕꾸러기가 되어
질타와 염려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교인들은 교회를 떠나 방황하고,
목회자들은 일할 교회가 없어
생계를 위해 전전하며 살아가는게 한국교회 현실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망했다는 거다.

4.
왜 망했는가.
예수교가 예수교의 내용에 관심이 없으니 망한거다.

왜 그랬을까?
당연한 결과다.

한국교회의 90년대는 성경과 무관하다.
대문을 활짝 열고 세속을 받아들였다.
교회마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그리했다.
보다 세상적이 된 교회는 사람이 몰렸고,
이목을 집중받고, 더 유명해져갔다.
우리에게 성경이 있었는가.

강단에서 성경이 전해지는가.
예수의 사상이 전해지는가.
성경 본문을 읽고 말하면 뭐하나
상관 없는 얘기를 하는데.

십년동안 한 권의 책을 배웠으면
그 주제는 알아야 한다.
혼자 읽어도 대충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이 그런가?

예수 없는 예수 교회가 존속될리 있는가.
속히 망하는게 예수님께 영광이 아니겠는가.

나 자신을 보면 안다.
예수에 관심이 있나.
무슨 우리가 예수에 관심이 있나.
예수에 관심이 있는데 이렇게 사나.
예수에 관심이 있는데 그런 생각이나 하고 사나.

우린 예수에 관심이 없다.
우리 자신에 대한 정직한 진단에서 시작해야 한다.

고장난 예수신앙을 아는 것이
갱신의 시작이다.

5.
예수신앙에는 두가지 축이 있다.
하나는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는 주라는 것이다.

믿음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그리고 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다.

사도신경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라는 고백이 나온다.

6.
그리스도라는 말은 그리스어.
히브리말로 메시아라는 의미다.
중국어로는 기독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메시아.
예수는 구원자라는 의미다.

예수가 구원자인가?
왜, 예수가 구원자인가.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한 인간이
왜 메시아가 되는가.

그리고, 죽지 않았는가.
죽었는데 어떻게 신이 되나.
물론 부활했지만,
그렇다면 아예 죽지 않았으면 되지 않겠나.

지금도 유대교는 이 사실 때문에
예수를 수용하지 못한다.
신이 어떻게 죽느냐는 것이다.

십자가.
예수의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가.
왜, 우리의 메시아는 죽어야했는가.

7.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독특한 속죄 사상 때문이다.
어떤 종교든 속죄론이 있다.
종교는 결국 죄의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
예수교의 속죄론은 대속론이다.
죄를 대신 속하는 것이다.

구약의 제사제도를 떠올리면 된다.
여호와께서 죄로 인한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속죄의 길을 여셨다.

죄 없는 순결한 짐승을
자신의 죄를 위해 대신 죽이는 것이다.

죄인은 짐승의 대속으로 의롭게 된다.
죄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이다.

어떻게 제사를 드리는 헌제자의 죄가
짐승의 죽음으로 해결될 수 있는가.
짐승이 죽었는데 어떻게
내 죄가 사해지는가.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전가교리이다.
imputation.
짐승의 머리에 안수함으로
죄인의 죄가 흠없는 짐승에게 전가된다.
이제 죄에 대한 진노와 죽음의 대상은 누구인가?
헌제자인가, 헌제물인가.
헌제물로 드려진 짐승이 진노와 죽음의 대상이다.
헌제자를 대신해 피를 흘림으로 죄값을 치른다.

예수가 바로 인류를 대신한 어린양이다.
인류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 되어
대신 피를 흘리신 것이다.

그 연결 고리가 바로 믿음이다.
믿음은 죄인과 짐승,
헌제자와 헌제물을 연합시켰듯이
죄인된 우리와 예수를 연결시킨다.
믿음으로인한 연합은
우리의 죄를 예수께 전가 시킨다.
우리의 사망이 이제 예수의 것이 된다.
예수의 죽음과 피흘림으로 죄가 해결된다.
예수께서 우리 대신 진노와 심판을 받으신다.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인가.
예수의 의로움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전가되는건
우리의 죄만이 아니다.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고,
흠없는 그리스도의 의로움이 곧 내 것이 된다.

단지 죄가 없는 존재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로움이 나의 것이 된다.
성부께서 보실 때 조금도 흠이 없는 의로움 말이다.

8.
따라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의롭다.
믿음이 그를 의롭게 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오해의 소지가 생긴다.
내가 의인이라는 것이다.
곧 자기 의에 빠진다.
이게 종교적 의로움으로 넘어가면 매우 위험하다.

한국교회는 거의 그 오류에 빠져있다.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획득한 의로움은 본래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믿음은 단지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받은 것 뿐이다.
나에게 누군가 무언가를 줄 때
그것을 받는 나의 손에 공로가 있는가.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위해 내가 한게 있는가.
오직 은혜다. 오직 선물이다. 믿음에는 값이 없다.

9.
믿음으로 얻은 의로움.
두가지 태도가 필요하다.

하나는 값 없이 은혜를 베푸심에 대한 감사다.
기계적인 감사 말고. 그 이전에
곰곰히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우리에게 하신 일을
매우 치밀하게 숙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경연구, 책읽기, 기도 등의 과정으로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깊이 알고 감격해야한다.

이것을 놓치면 기독교 신앙은 없다고 봐도 좋다.

둘째는 이웃에 대한 태도이다.
값 없이 얻은 의로움을 유념해야 한다.
어떤 특권을 얻고, 누리는 양
이 믿음 밖에 있는 사람을 배척해선 안 된다.

조금도 차이가 없는 똑 같은 사람이다.
오히려 이 은혜를 경험했기에
우리의 삶은 이웃을 향하고, 이웃을 위해야 한다.

이 믿음을 지니고도 겸손함이 없다면
잘못된 믿음이다. 믿음은 그런게 아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는데
그리스도를 닮지 않을 수 있는가.

내 안에 예수의 영이 있는데,
어찌 내 삶이 이기적일 수 있는가.
그건 결국 예수가 이기적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내 안에 예수의 영이
거하지 않을 수 있다는게 아닌가.

두려운 얘기지만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번 받은 구원은 영원한 구원.
일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구원이 없는 사람일 수 있다.
예수를 잘못 배웠으니
스스로 구원의 확신을 오해하는 것이다.

구원은 확신의 문제가 아니다.
믿음의 문제다.
믿음이 있는가에 대한 확신이지
믿음이 없는 확신으로 어찌 구원을 받는가.

10.
예수로 의롭게 된 사람은
반드시 예수를 드러내야 한다.

한국교회가 왜 이렇게 됐는가.
믿음을 오해했다.
말로만 예수를 믿었다.
자신은 믿었으니 의롭다는 것이다.

예수신앙은 반드시 윤리적으로 드러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로 사는 것이다.

믿음과 삶은 나뉘지 않는다.
예수의 영이 거하는 이의 삶이
예수와 무관할리 없다.

무엇이 개혁인가.
무엇을 갱신해야 하는가.

먼저 우리의 믿음의 갱신해야 한다.
성경적인 바른 믿음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 말이다.

그리고, 그 믿음에서 비롯되는
철저한 제자도의 삶이 뒤따라야 한다.

믿음과 삶은 나뉘지 않는다.
믿음과 삶이 나뉘면 거짓이다.

삶이 없는 믿음은 가짜 믿음이다.
믿지 않으니 살지 않는 것이다.

​황정현목사(제자도연구소)
hwang@gooddisciple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