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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제자도 칼럼

‘성경읽기’ 다시보기

by 황정현 2018. 2. 22.


'왜 설교본문은 주로 서신서일까요?'
'신앙생활을 오래 했음에도 왜 복음서가 낯설까요?'

매주 모여 함께 성경읽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청년들에게서 나온 질문입니다. 참 중요한 질문이죠. 정말 왜 그럴까요. 궁금하지 않습니까. 어딜가나 로마서 설교가 주를 이루는 이유. 뭘까요.

한국 보수교회의 성경읽기가 ‘구속사적 해석’에 매여있기 때문입니다. 구속사적 성경해석은 성경 전체를, 예수를 중심으로 그의 메시아와 그리스도 되심에 초점을 맞춰 읽는 방법입니다. 물론 건전한 방법이고, 그동안 한국교회에서 정통해석으로 여겨온 방법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 하나로 성경읽기를 끝내려는데 있습니다.

이 방법의 장점은 엇나가지 않고 비교적 안전하게 성경해석의 뼈대를 세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성경읽기가 건조해 질 수 있는 약점이 있죠. 대표적으로, 서신서는 주목하면서 상대적으로 복음서를 소홀히 하게 되는 경향입니다. 이는 예수의 신성과 세상을 위한 대속제물로서의 의미를 강조함에 따르는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그 의미를 풀어 설명한 로마서, 갈라디아서등의 서신서는 집중하게 되지만, 상대적으로 예수의 생애를 다룬 복음서의 긴 호흡은 굳이 세세히 들여다보지 않게 되는 것이죠. 어차피 사복음서 모두 신으로서 인간이 되신 예수와 인간의 속죄를 위한 십자가 죽음을 말하고 있으니, 굳이 그 안에 기록된 예수의 삶, 행적과 가르침은 자세히 살피지 않게 되는 겁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동시에 주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예수를 나의 구원자요, 동시에 주인으로 모신다는 뜻이죠. 기독교신앙의 중요한 이 고백은 성경읽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봅니다. 그동안 보수교회의 성경읽기는 ‘예수는 그리스도’에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구원자로서의 예수만 의식하다보니 성육신과 죽음, 부활 등의 의미만을 살피게 되는거죠. 그러니 ‘내러티브’라 불리는 이야기로 구성된 성경의 내용에는 집중하지 못하게 됐던 겁니다.

이제는 '예수는 주’라는 초점이 병행돼야 합니다. 예수는 우리 죄를 사하시는 구원자, 그리스도일 뿐만 아니라 내가 오늘을 살아가는 지침이 되고, 그 모범을 보이신 인생의 주인이라는 고백. 이 고백의 초점으로 성경을 읽어나가는 것이죠. 그렇게 성경을 읽으면 비단 예수의 성육신, 십자가의 죽음, 부활과 재림 만이 아니라, 수많은 무리와 제자를 대하셨던 예수의 태도, 특히 괄시천대 받던 사회적 약자를 향한 집요한 관심과 애정어린 말과 행동을 보게 됩니다.

통상 보수교회는 전자의 성경읽기를, 진보교회는 후자를 주로 다뤄왔습니다만, 이 둘은 서로 배치가 아니라, 보완되는 것으로 여김이 좋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전자의 방법으로 성경을 배우고, 읽어왔습니다만 최근 사회학 관련 서적들을 접해서인지 그간에 보이지 않던 구절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내용에 이런 예수의 말씀이 있었나 싶은 구절들이 종종 눈에 띕니다. 가령 회당장의 죽은 딸을 살리는 장면에서 이전에는 눈여겨 보지 못한 구절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라는 말씀을 주목하게 되는 식이죠. 우리에게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는 구절은 익숙합니다만 그 다음에 이어지는 이 말씀은 아마 낯설겁니다. 하지만, 이 구절도 분명 복음서의 저자가 남긴 예수의 말씀입니다. 불필요한 구절이 아닌거죠.

점차 윤리가 우리사회에서 중시되고 있습니다. 그간에 교회가 개인윤리에 대한 언급은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사회윤리에 대한 가르침과 의식은 낮았죠. 윤리에 대한 우리사회의 감수성이 높아지고, 기대치가 커짐에 따라 교회 역시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윤리적 의미를 고민할 시점이 되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윤리적인 삶,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한 바른 신앙적 관점과 우리의 태도. 이러한 것들을 성경 속에서 찾고 설명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전에 비해 한국교회의 성경읽기가 소원한 이유, 혹시 이런 가르침의 부재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황정현목사(제자도연구소)
hwang@gooddiscipl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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