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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제자도 칼럼

영혼이 있는 목회

by 황정현 2021. 3. 17.

주일이다. 불과 일년 전만 해도 예상치 못하던 한국교회 모습이다. 불확실에서 비롯되는 불안정함이 관련자들에게 느껴진다.

이럴수록 고민의 방향은 다른쪽이어야 한다. 그간 습관처럼 의식해오던 [숫자]가 아니다. 그게 예배당이건 가상공간이건 숫자는 본질상 큰 의미가 없다. 그보다 중요한건 [영혼]이 있느냐 하는 것. 오롯한 정신을 담아내는 종교행위이냐는거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건 모임의 대상, 청중이전에 종교지도자-목사의 존재다.

한국교회는 90-2000년대 유례없는 교회성장의 시기를 지냈는데, 결과적으로 이게 본질을 망친 원흉이 되었다. 모든 것이 넘쳐나니 고민의 방향은 예배당건축, 이벤트, 교인관리로 모아졌고 목회자 수급 역시 그에 맞게 이루어졌다. 사역자를 구하는 공고에는 우습게도 경영, 마케팅을 전공하거나 잘 수행하는 이를 구한다는 노골적인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쯤되니 신학교 분위기는 진리를 탐구하고, 신의 계시를 학습하는 치열함보다, 그 안에서 도움이 될 만한 인맥을 만나고 라이센스를 취득하기 위한 코스웍 정도로 자리잡아갔고, 목회후보생들은 그보다 많은 에너지를 자신의 내일을 열어줄 수 있는(또는 그럴 것으로 기대하는) 교회현장에 투입하며 장미빛미래를 꿈꿨다.

응당 목회후보생들의 준비는 행정, 마케팅, 중간관리자로서의 덕목(?)을 쌓아가는데 집중됐고, 또 그렇게 준비한 이들은 실제로 '삼성과 같은' 교회에 들어가 주변 친구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흥왕하던 [종교산업]은 대형교회와 전도유망하던 목회자들의 스캔들이 잇달아 터지며 균열이 가고, 변화하는 사회문화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하며 사그라들다가 세월호등의 사회문제를 만나 악재가 반복되고 결국 코로나 세상이 되니 폐업지경에 이르렀다.

아이고. 전혀 다른 세상이다. 그동안 준비한 것들이 수포로 돌아갔으니 어찌할까. 사람이 모일 수 없는데 행정이며 마케팅이 다 무슨소용이고. 신학교시절 종교본질의 고민을 돕는 책들은 레포트용으로 훑어본게 전부고, 신의 계시라는 66권의 성경조차 치열하게 파고들지 못했고, 신학의 뼈대라는 조직신학은 물론 구약신학, 신약신학, 여러 해석학도 주마간산 살펴만 봤으니.

이쪽도 변화가 빠르다. 이미 담임목사 자리는 386세대가 다 차지하고, 이후로는 유리천정같은 곳에서 할 수 있는거라곤 교회개척. 그래도 초기엔 하던대로 행정력 발휘하면 자리잡는다카더라는 얘기가 들렸지만, 그게 막힌 이후론 카페교회, 학원교회, 도서관교회 등등 각종 창의적인 형태가 보고되더니 이제 그마저도 어렵고 이중직을 통해 생계와 목회를 이어간다는 전언이 지배적이다.

길게 끌고왔지만 하고자하는 얘기는 이거다. 종교지도자에겐 영혼이 있어야 한다는거. 그게 기존형태의 전통적인 개척교회건, 거기에 교인이 열명이건 한명이건 아니면 유튜브 온라인예배가 되었건, 줌 화상모임이 되었건, 요즘 스멀스멀 올라오는 클럽하우스가 되었건 어느 플랫폼 어떤 형태가 되었건 여기서 중요한건 지도자의 존재감이라는거다. 그래야 성공한다는 경영적인 얘기가 아니라, 종교가 종교로서의 시대적인 역할을 하려면 그래야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이제 종교지도자가, 목사가 수행하고 준비해야하는게 달라질거다. 다른 교회 홈페이지 들여다보던 옛 습성은 버리고. 내 존재를 깊게 할 수 있는 여러 수행이 필요하겠다. 생각을 깊게하고, 마음을 넓고 투명하게, 신의 계시를 담아낼 수 있는 시선, 혼돈의 세상에 흔들리는 이들을 잡아줄 수 있는 중심과 통찰이 있어야 하겠다.

말은 이렇게 해도 그간의 시대적 요구와 참 많이 다르니 가능할까 싶지만, 시대가 변해도 언제나 본질은 이것이었다고,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렇게 준비하고 살아오신 존경스런 성직자들이 여전히 계시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황정현목사
제자도연구소 대표
disciples.inst@gmail.com
facebook.com/calvinh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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